another world 1
베른하드는 자신과 동생사이의 감정을 사랑이라 부르지 않는다. 서로의 외로움, 혼자있을 수 없다는 서로의 이기심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깨져 버린것은 언제부터였는가, 서로가 곁에 있어도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에 베른하드는 가끔 프리드리히가 마치 옆에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곤 했다. 눈가가 피곤한지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꾸욱 누른 베른하드는 자신의 옆에 앉아 책을 보는 프리드리히를 빤히 쳐다봤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프리드리히는 들고 있던 책을 짠 펼쳐들었다. 성기사 이야기. 책 제목이었다. 이거 마치 우리들 이야기 같지 않아? 그렇게 말하는 프리드리히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책을 넘겼다. 나도 언젠가 책에 새겨지게 될까, 그래 베른이 책을 내보는게 어때? 하는둥 혼잣말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책을 툭 덮곤 베른하드를 보며 말했다. 베른, 요즘 말이 확 줄어든거 알아? 예전에도 그랬지만- 프리드리히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베른하드가 손을 뻗었다. 뺨에 닿아오는 손은 커피잔 때문에 한껏 달아올라 있었다. 뺨, 콧잔등,눈가,이마 까지 툭툭 건드린 베른하드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차가워, 한마디에 프리드리히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베른하드의 손에 기대었다. 그야 - 프리드리히는 베른하드가 원하는 말만 하고 대답한다. 그렇기에 베른하드는 금방 프리드리히의 말을 끝까지 들을수 없었다
똑똑, 실례하겠습니다 베른하드. 둘사이의 정적을 깬건 다름아닌 에바리스트였다. 익숙한듯 문 을열고 들어옴 에바리스트는 꾸벅 인사하며 베른하드의 옆에 앉았다 들고 있던 문서를 내려놓으며 시선을 내리면 책상위 책이 아무렇게나 어질러 있었다 그중 베른하드의 손에 있는걸 보곤 에바리스트는 작게 웃었다 그거 성기사 이야기죠? 익숙한듯 말하는 에바리스트에게 베른하드는 책을 한번 넘겨보더니 그에게 넘겨줬다 읽어봤나? 책을 받아든 에바리스트는 아뇨, 하며 입을 열었다 훈련생시절에 프리드리히교관님이 잠깐, 거기까지 이야기한후 에바리스트는 입을 꾹 다물었다 베른하드의 대답이 없었다 그럼가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에바리스트의 손을 잡았다. 베른하드? 내려다본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지나치게 차갑군, 그러자 에바리스트는 탁상위에 있는 커피잔을 가르키며 말했다.
"베른하드의 손이 지나치게 뜨거운겁니다."
손을 뗀 에바리스트가 고개를 꾸벅하고 나갔다. 어느새 프리드리히는 자리를 피하고 없었다
* * *
베른하드는 사교성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사실 다정한 사람도 아니었고, 지나치게 냉정한 사람역시 아니었다. 그저 공과 사를 잘 구분하는 그런 업무적인 사람일 뿐이었다. 하지만 프리드리히는 달랐다.
겉모습을 보고서 둘이 형제라는 것을 그것도 쌍둥이 라는 것을 바로 알아 차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고 그걸 알리고 다니는 성격역시 둘은 아니었기에 은연중 숨기고 있었던건지도 모른다.
어쩌면 프리드리히가 아니었으면 남이라고 해도 믿을듯한 두 사람이었다. 프리드리히가 베른하드의 방에서 종종 나오는 것을 보고 둘 사이에서 게이가 아니냐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었다. 베른하드는 그에대해 침묵했지만 프리드리히는 달랐다. 자신의 형이 저런 성격임을 알기에 자기가 나서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 뿐, 딱히 그런 소문이 돌아도 자신은 아무렇지 않았다. 그건 쌍둥이 형 베른하드 역시 마찬가지 였을 것이다. 그렇게 프리드리히는 사람들과 섞여 가며 사귀는 사이냐고 물어오면, 설마. 하고 대답하곤 했다. 형제야. 그렇게 말하면 주변에선 모두 못믿는 눈치였으나 그것 까지 신경쓰기에 둘은 한가하지 않았다.
베른이 아무말도 안하니까 아직까지 그런걸 믿는 애들이 있는거라구, 책장을 뒤적 거리는 프리드리히가 불평하듯 말했다. 어질지만 마라, 하고 말했던 베른하드의 말을 깡그리 무시하곤 발밑으로 책이 우수수 떨어졌다.
"부정해봤자다. 아니란걸 알면서도 소문은 퍼지기 마련이지"
우와-너무한다구? 베른하드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머그잔과 커피잔 하나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곤 프리드리히 쪽으로 다가갔다. 뭘 찾고 있는건지 바닥이 엉망이어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린 베른하드를 본 것인지 프리드리히가 성기사책 이라고 대답했다.
"에바리스트가 빌려갔다."
그녀석이? 의외라는 듯 말하면서도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자 바로 행동을 멈추었다. 그때 네가 다 읽어주지 않았나 보더군, 책 하나하나 집어 올린 베른하드가 말했다. 그야 그때, 갑자기 명령이 떨어져서.
하늘이 어두워졌다. 소용돌이가 나타나고 나서 계절은 사라지고 날씨도 자주 뒤바뀌었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베른하드는 책을 모두 정리한후 말이 없는 프리드리히를 바라봤다. 베른하드는 자신과 동생사이의 감정을 사랑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텅 빈 눈동자에는 아무것도 비추어져 있지 않았다. 바로 앞에 있는 자신 역시 비추어 지지 않았다. 외로움에서 비롯된 관계, 무엇이 서로를 그렇게 외롭게 했던 것일까, 무엇이 결렬되었기에 서로를 이끌었던 것일까. 형재애 라기엔 너무 애틋했고, 사랑이라기엔 너무 무심했다.
혹자는 이걸 사랑이라고 말했다.
2
베른하드가 그렇게 냉정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에바리스트를 보면 알수 있었다. 정작 그의 제자 에바리스트는 그에게서 다정함 같은거 찾을수도 없다고 말하고 다니긴 하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엔 바쁜일에도 불구하고 제자를 맡아 키우는 걸 보면 그로써는 충분한 다정함이었다.
의문은 다른곳에 있었다. 그는 왜 자신의 동생에게만 철저하게 냉정한가, 그리고 프리드리히는 그런 그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는가. 형제라고 한것은 프리드리히의 거짓말이 아닐까, 까지 다양한 추측이 나왔지만 어느 하나 정답에 가까워지진 못했다. 그 이야기를 프리드리히가 못들은 것은 아니었다. 바로 눈앞에서 너네 형제 맞냐? 하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였으니 그의 무심함이 얼마나 티가 났는지 프리드리히가 인상을 찌푸릴 정도였다. 베른이 날 싫어하나봐, 그렇게 웃으며 대답하면 주변에선 그게 뭐야-하고 한바탕 웃음바다가 파도처럼 일어났다가, 가라앉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항상 테이블 위에 커피가 놓여져 있었다. 얼마전의 베른하드였다면 그냥 지나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달랐다. 천천히 걸어가 미적지근해 보이는 커피잔을 잡았다. 뜨거워, 베른하드는 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프리드리히?"
밖에서 사람 발 소리가 났다. 베른하드는 평소와는 다른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착 가라앉은 목에 진득한 것이 걸린듯한 목소리였다. 방문을 벌컥 열자, 정돈되어 있는 테이블이 보였다. 어제 분명 마지막 마무리를 하고서 너무 피곤한 탓에 그냥 침대로 들어갔던 기억이 있었다. 프리드리히, 베른하드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리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이름 역시 쩍쩍 갈라졌다. 서재, 베른하드는 항상 거기에 있던 프리드리히를 기억해 내며 그쪽으로 걸어갔다. 풀냄새가 났다. 프리드리히가 창문을 열어놓은게 틀림 없다.
"프리드리히.."
"베른하드?"
시야가 흐릿해졌다. 자신보다 한참 작은 체구가 다가와 부축하는걸 베른하드는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에바리스트, 베른하드가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베른하드, 지금 열이 엄청납니다. 오늘 하루는 쉬시는 편이 좋을것 같아서"
"방에 커피는..."
"베른하드?"
에바리스트는 거기 까지 말한 후 베른하드를 다시 방으로 부축했다. 의외로 순순히 끌려오는 베른하드에 에바리스트는 숨을 내쉬고는 방문을 붙잡고 말했다. 죽이라도 가져오겠습니다. 살짝 문을 닫는 제자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베른하드는 콜록이며 더운 숨을 내뱉었다.
프리드리히는 언제나 커피를 너무 달게 탔다. 베른하드가 싫어하는걸 알면서도 자신이 좋아하니까, 하고 말하며 설탕을 마구잡이로 넣었다. 단것도 가끔 먹어줘야 스트레스가 풀리지, 베른하드는 억지로 단 커피를 마시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정도는 아니다. 그렇게 대답했지만 프리드리히는 듣지 않았다. 반 정도 마신 베른하드를 보고서 프리드리히가 시익 웃었다. 어때 풀리지? 아마 평소 같았으면 쳐다도 보지 않고 다 버렸을 커피를 왜 그날은 다 마신건지 모른다. 그래, 베른하드가 대답했다. 어쩌면 너무 스트레스가 쌓여서 그런건지도 모른다.
다음날 베른하드는 프리드리히가 타논 커피를 망설임 없이 싱크대에 부워버렸다. 프리드리히가 보는 눈 앞에서
왜 지금 그 일이 생각났는지 모를일이었다. 이제 미지근해진 커피는 베른하드 자신의 입에 딱 맞는 커피였다. 프리드리히가 타논 것이 아니었다.
* * *
"이제 가봐도 되네"
어느정도 열이 내려간 베른하드가 앉으며 말했다. 에바리스트는 정말이지, 하며 웃을수 밖에 없었다.
"오늘하루는 여기 있도록 하겠습니다."
"....생각보다 한가한가 보군"
에바리스트는 조금도 손대지 않은 커피잔을 보며 쓴웃음을 삼켰다.
"베른하드야 말로 생각보다 멀쩡해 보입니다."
커피 다시 타드릴까요? 그렇게 묻자 베른하드는 대답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달그락 거리며 내온 커피는 유독 새까맣다. 그옆에 앉은 에바리스트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직 미열이 남아 있는 베른하드는 의자에 눕듯이 기대었다. 눈을 살짝 감았다.
"오늘은 그저 베른하드와 조금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온것 뿐입니다."
"....."
"아픈건 예상 외였구요."
에바리스트가 전혀 몰랐다는 듯 이야기했다. 들고온 서류 제일 밑에서 책을 꺼냈다. 그때 빌려간 책이었다.
"베른하드는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으셨죠"
프리드리히가 그렇게 찾던 책이었다. 읽고 싶을리가 없다. 그것을 알면서도 에바리스트는 그렇게 물었다.
"교관은...항상 비오는 날이면 이 책을 읽어줬죠."
"........"
"훈련을 못하니까, 애들은 집중시켜야 겠고, 해서 읽어준듯 한데 저는 괜찮았다고 생각합니다."
생각보다 재밌었거든요. 에바리스트는 책표지를 손으로 닦아내며 말했다.
"나중엔 교관이 더 재미가 들린것 처럼 보였지만"
에바리스트가 웃으며 말했다. 듣고 싶지 않았다. 베른하드는 등을 바로 세워 말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지? 그가 날을 세운것을 느낀 에바리스트가 흠, 하고 눈을 돌렸다.
"베른하드도 한 번 읽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한것 뿐입니다."
기분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에바리스트는 거기 까지 말한 후 자리를 벗어났다. 탁 닫힌 문에서 멀어지는 발소리가 났다. 피곤하군, 베른하드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자리에 일어선 베른하드는 바로 서재로 갔다. 누가 열어논건진 몰라도 큰 창문이 활짝 열려 커튼이 펄럭이고 있었다. 이 소리 때문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창을 닫고 커튼을 치자 금새 서재는 어두워졌다. 잘 정돈된 서재를 보고서 베른하드는 에바리스트의 짓이군, 하고 생각했다.
베른, 책 왔네. 프리드리히가 웃으면서 책을 손에쥐고 흔들었다.
진짜 책 안 읽을거야? 그 말에 현기증이 나는것만 같았다. 프리드리히, 그렇게 부르면 응 하고 대답해온다.
"그런 말은 하지 말아줘"
프리드리히를 끌어안으면, 어깨에 얼굴을 묻어온다. 응, 하고 대답하는게 아쉽다.
3
그의 제자가 타놓고 간 커피는 너무 썼다. 컵을 내려놓는 베른하드를 보고 프리드리히가 웃었다. 역시 내가 최고지? 베른하드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에바리스트의 커피가 자신의 입맛과 맞지 않다는 것은 인정했다. 다시 커피를 타려고 하자 프리드리히가 달라붙었다. 내것두, 하면서 칭얼거리는 프리드리히에게 어떻게, 하고 묻자 프리드리히는 너랑 같이 하고 말했다.
말했잖아. 난 네가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한다고
* * *
회의가 끝났다. 천천히 자리를 벗어난 베른하드는 들려오는 목소리를 모조리 무시한후 복도를 걸었다. 복도 양 옆으로 보이는 훈련장에 베른하드는 눈을 가늘게 떴다. 햇볕이 강렬하게 내리쬐며 훈련생들의 발 아래로 그림자가 길게 섰다. 그들의 앞에서 목청 높여 지도 하는 남자를 보고서 베른하드는 고개를 돌렸다. 프리드리히,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 목구멍에서 진득하니 달라 붙어 나오지 않는 이름을 되새겼다.
복도는 어두웠다. 해가 들어오지 않는 복도는 검은 벽과 천장, 차가운 바닥으로 소름이 끼쳤다. 얼마전만 해도 이 복도에 많은 사람이 있었다. 저벅저벅 걸어다니는 소리가 외롭다. 발걸음 소리가, 어두운 복도가 그 모든게 베른하드가 혼자라고 말하고 있었다. 고개를 천천히 들어올리면 복도 끝에 프리드리히가 있었다. 방 문 앞에 기대어 자신을 기다리는 듯한 모습에 베른하드의 발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베른하드!"
어깨를 붙잡아온 온기에 베른하드가 고개를 돌렸다. 숨을 거칠게 내뱉으며 베른하드를 붙잡은 에바리스트가 한쪽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걸음이 빠르시네요. 프리드리히가 자신을 알아본건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베른하드는 에바리스트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었지만 에바리스트 역시 베른하드를 그냥 보낼 생각은 없었다.
"베른하드"
"오늘은 더 할 말이 없네"
"프리드리히 교관에 대해서 입니다. 라고 하시면 들으실 겁니까?"
"...약았군"
"베른하드가 이상한겁니다."
자리를 옮기죠. 베른하드는 복도 끝을 힐끔 쳐다봤다. 어느새 방에 들어갔는지 프리드리히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 베른하드가 에바리스트를 따라 걸었다. 복도에 두명의 발소리가 울렸다.
에바리스트가 프리드리히에 대해 말하지 않을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단지 동기가 필요 했을 뿐이다. 업무적인 이야기와 최근 신입 훈련병들에 대한 이야기 였다. 아이자크는. 하고 묻자 에바리스트가 고개를 저었다. 걱정이군, 베른하드가 중얼거리듯 말하자 에바리스트가 그를 빤히 쳐다봤다.
"왜 그런가"
"아뇨, 그냥"
"........"
"아무것도 아닙니다."
베른하드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흠, 하고 고개를 들자 어느새 많은 시간이 흘러있었다. 기다리겠군, 그렇게 생각한 베른하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이 가시죠, 에바리스트가 따라 일어나자 베른하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베른하드. 전 아이자크보다 베른하드가 더 걱정입니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군"
복도끝 방에서 불빛이 새어나왔다.
"제 착각이길 바랍니다만,..가끔 베른하드는 마치 프리드리히 교관이 살아있는 듯한 태도를"
"에바리스트, 그 말 그대로 돌려주지"
"예?"
"자넨 가끔 프리드리히가 죽었다는 듯 이야길 하는군"
자신을 불러오는 에바리스트의 말을 무시하고 방문을 쾅 닫으면 소파에 앉아 있는 프리드리히가 보였다. 왔어? 하고 웃는 그 앞에 탁상에는 차게 식어버린 커피가 있었다. 어, 왔어. 하고 대답하면 자리에서 일어나 끌어안아주는 프리드리히가 있었다.
4
“베른 대체 왜 그런거야? 이번에 위험하다는거 너도 알잖아.“
프리드리히가 그렇게 말했지만 베른하드는 대꾸하지 않았다. 베른! 프리드리히가 큰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자 미간이 약간 찌푸려 지면서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놨다. 더이상 할 말 없다. 프리드리히. 베른하드가 조용히 말했지만 프리드리히는 납득하기 힘든듯 그에게로 다가갔다. 어깨를 붙잡는 손이 억세다.
“뭔가 더 납득할 만한 이유를 말해봐, 아님 나 절대 동의못해 베른“
레지먼트에 안 위험한 일이 있을까. 적어도 프리드리히는 그렇게 생각한다. 전장은 위험하다, 그건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막무가내로 빼내버린 베른하드를 이해 할 수 없었다. 위험해서 그렇다고? 그건 납득할만한 이유가 되지 않았다. 위험한것은 누구나 마찬가지 였다. 만약 그것이 자신과 가족이라는 그런 연을 생각해서 빼버린 것이라면 더더욱.
“설마 가족이라고, 형제라고 해서 날 빼버린건,“
“솔직하게 말하지 프리드리히, 방해다.”
베른하드가 자리에 일어서며 손을 쳐냈다. 툭 하고 떨어진 손이 갈곳을 잃어 허공에 맴돌았다.
“지금 네 실력으론 걸림돌 밖에 되지 않아, 그래서 뺐다. “
그렇게 말하는 것이 옳은 선택이었을까, 솔직히 지금 생각해도 그 말 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해 과거의 나에게 원망은 하지 않는다. 눈 앞이 완전이 암전되었을 때에도 베른하드는 프리드리히를 생각했다. 자신의 하나뿐인 가족은, 동생은 마지막에 무슨 표정을 지었더라. 그게 마지막 인줄 알았다면 자신은 다른 말을 해줬을까. 왼손이 욱신거렸다.
다시 눈을 떴을때는 새하얀 천장이 보이는 병실이었다. 개인 병실인지 주변을 둘러보아도 아무 소음도 들리지 앉았다. 손이 불편하다 싶어 그대로 못쓰게 되버린건가 생각했는데 몸을 일으켜 보니 프리드리히가 잡고 엎드려 자고 있었다. 며 칠이나 잔건지, 얼마나 시간이 지난건지 짐작 조차 되지 않아 프리드리히를 깨울려 하니 그 머리카락이 부드러웠다.
“프리드리히, 깨어있는거 다 안다. 일어나“
“…역시 베른은 못 속이겠다니까”
베시시 웃으며 일어나는 프리드리히를 보며 기분이 좋지 않은 건 분명 아파서 만은 아닐 것이다. 임무는 어떻게 됬지, 베른하드가 묻자 프리드리히는 대답이 없다. 대충 짐작이 가 베른하드는 눈을 지긋이 감았다. 프리드리히 손좀 놔주면 안될까, 못움직이겠는데. 살짝 팔을 빼려 하자 프리드리히가 더 꽉 잡아왔다.
“작전은 실패했어,“
“…….“
“베른은 내가 있으니까, 그러니까. ”
“프리드리히”
“…왼손, 못쓸지도 모른데”
충격받지 않은건 아니었다. 다만 어느정도 예상을 하고 있어서 덜 할 뿐이었다. 군인에게 더 이상 검을 들 수 없다는건 사형선고와 같았다. 베른하드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나중의 일일 뿐이었다. 실제로 손은 완치됬고, 검도 다시 잡을 수 있었다. 베른하드는 자신이 죽을거라고 생각했던 그 상황을 떠올렸다.
왼손을 잡고 놓지 않은 프리드리히의 머리를 오른손으로 쓰다듬었다.
“우리 가족이니까, 내가 옆에 있을테니까.”
가족이라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형제라는 것이, 전우라는 것이, 베른하드는 리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프리드리히를 떠올렸다. 조금은 부럽다고 생각했다.
“프리드리히, 난 한번도 우리가 가족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베른”
“모든 것을 잃었던 그날, 차라리 혼자였음 하고 생각했다. 너무 버거웠어”
“…….“
“차라리 남이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랬다면 더 이상 마주치는 일도 없었을텐데, 살아 돌아와서 해주고 싶은 말은 이것 들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베른하드는 그리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이 곳에서 가족이라는 것은 사사로운 감정이었고, 더욱이 그 이상의 감정이란 있어서는 안돼었다. 차라리 확실히 선을 그어버리자, 그리 했음에도
“베른, 난 가끔 베른이 진심을 말할까봐 무서워.“
“…….“
“근데 이제 거짓말도 무서워 “
그리 했음에도, 날카롭게 파고 들어오는 동생은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런 말은 하지 말아줘“
* * *
베른, 식은땀 장난아니다. 차가운 손이 이마에 닿자 눈이 다시 감겼다. 악몽이라도 꾼거야?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프리드리히 목소리가 짓궂다. 좀 깨워주지 보고만 있었나, 베른하드가 말하자 프리드리히가 그의 품에 달려들었다. 침대위로 풀썩 누운 프리드리히가 싱글생글 웃었다. 나 그런거 못해, 알잖아. 베른하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프리드리히 네가 나오는 꿈이었다.”
프리드리히는 대꾸가 없었다.
“정말 지독한 꿈이었는데”
어질러진 방안을 보며 베른하드는 프리드리히를 내려다 봤다.
“차라리 지금이 꿈이었음 좋겠군”
그럼 꿈이라고 생각해 버려, 간단히 돌아오는 프리드리히의 대답에 베른하드가 작게 웃으며 그를 끌어안았다.
“나 그런거 못해, 알잖아”
방금 그 대답 치사했어, 프리드리히가 마주 안아왔다.
5
자욱하니 눈앞을 가린 안개에 베른하드가 미간을 찌푸렸다. 프리드리히? 하고 부르면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주변에서 어수선 하니 동료를 챙기는 모습이 보였다. 프리드리히! 언성을 높인다. 하지만 주변 소음에 묻혀버려 닿을 일은 없었다.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벗어났다.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며 시야가 확보됬다. 누군가 프리드리히를 부르며 달려갔다. 순간 그 모습을 보고 못 박은듯 움직일 수 없었다.
벌벌 떨리는 다리로 그가 뛰어간 곳으로 서서히 다가갔다. 주변의 소음은 어느샌가 타버린 재 처럼 흩어졌다. 마치 연극의 한장면 처럼 서서히 걷히는 안개에 베른하드는 입을 틀어막았다. 치밀어 오는 구토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베른하드는 사람들을 해치고 지나갔다. 그럼 그 곳 중앙에는 하얀 조명이 비춰졌고, 약속이라도 한 듯
자신과 동생의 모습이 보였다.
“베른,..베른 난”
젠장, 베른하드가 손톱을 물어뜯었다. 어떻게 해서든 깨어나야 했다.
“베른이 나...싫어 하는거 알아”
아니 동생을 닥치게 하는게 먼저여야 했다. 저 입을 틀어막아야 한다.
“근데, 나..베른 많이 좋아해..좋아해”
귀를 틀어막아도 동생의 울음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자신은 무얼 하고 있는걸까, 하지만 너무 잘 알기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주저 앉고 싶었다.
“좋아해서 많이 미안해..”
프리드리히, 넌 내가 어떻게 했음 좋겠어?
잠에서 깨어난 베른하드는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것이 꿈에서 나온 당사자가 옆에 없으니 그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가라 앉았다. 차라리 눈 앞에 있었다면, 베른하드는 침대 옆 탁상에 엎어져 있던 액자를 다시 바로했다. 활짝 웃고 있는 동생과 그 옆의 자신을 보며 베른하드는 작게 웃었다. 웃고, 또 웃었다
프리드리히는 언제나 집무실 소파에 있었다. 언제나 처럼 미지근한 커피와, 빌어먹을 책과 함께. 그 옆으로 돌아가 중앙에 풀썩 앉은 베른하드에게 프리드리히는 웃으며 왔어? 하고 물었다. 기분 좋아 보이네, 프리드리히는 들고 있던 책을 내려 놓으며 물었다.
“오늘 꿈에 네가 나왔어, 프리드리히”
프리드리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악몽 아니야? 짓궂게도 프리드리히는 그리 물었다.
“그냥 홀가분해진 기분이었어”
철컥, 품에 있던 작은 권총이 소름끼치는 소리를 냈다. 피폐해져 가고있다. 알고 있다. 당신때문에 프리드리히가 죽었다. 알고 있다. 당신의 그 냉정한 태도가 어영부영한 마음이 프리드리히를 죽인 것이다. 알고있다. 꿈에서 프리드리히가 나온다. 프리드리히는 결코 진실은 말하지 않을것이다.
“그만할까 우리”
베른하드가 프리드리히에게 총을 겨누며 말했다. 진실같은거 오래전에 알고 있었다. 프리드리히가 웃었다. 총구에 책을 가져다 대어 막았다. 원한다면, 베른하드는 그 한마디에 총을 내려놨다. 원할리가 없었다.
프리드리히가 진실을 말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안다. 자신이 원하는 대답만 한다는 것도, 그렇기 때문에 베른하드는 프리드리히가 원하는 대답은 결코 해주지 않을 것이다. 그는 여기 있으면서도 없는 존재였다.
“프리드리히, 내가.....”
잘 말해야 할 것이다. 베른하드는 침을 삼켰다. 입안이 텁텁하게 모래를 씹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제 무대의 주인공은 자신이었다. 더 이상 못 할 말은 없었다.
“미안해“
프리드리히는 조금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만 같은, 마치 꿈속의 창백했던 동생과 같이, 베른하드가 소파끝을 꽉 잡았다.
“이만 사라져줘, 프리드리히”
6
그 후 베른하드가 프리드리히를 입에 담는 일은 없었다. 계절은 빠르게 지나갔고 그의 일상도 빠르게 복귀되었다. 프리드리히의 유품은 모두 소각했다. 베른하드의 명령이었다. 그때 에바리스트는 그의 표정을 볼수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프리드리히를 싫어하는건 아니었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했다. 아마 베른하드가 저 이상 망가졌다면 에바리스트가 먼저 말을 꺼냈을 것이다. 에바리스트는 자신이 본 모든 것을 가슴안에 묻었다.
검은 커피 위로 먼지가 둥 떴다. 어느새 프리드리히가 죽은지 한 해가 넘어가고 있었고, 다시 봄이 왔다. 오랜만에 휴식에 베른하드는 커피를 멍하니 바라보더니 잔을 씻어내고 다시 커피를 탔다. 이상하게도 커피맛은 썻다. 사실 얼마전부터 커피는 입에 대지 않고 있었다. 다시 끓여낸 커피를 저 멀리 치워 놓고는 마저 서류를 훑었다. 비번일에 밀린 서류 정리라니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한참이나 그러고 서류를 쳐다보니 눈이 피곤해져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마땅히 쉴 이유가 없었다. 전에는, 예전에는, 어떻게 했더라. 베른하드는 펜을 내려놓고선 자리를 벗어났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레지먼트 안에선 마땅히 쉴 곳이 없었다. 그렇다고 짧은 비번일에 밖에 나가는 것은 오히려 피로를 쌓을 뿐이었다. 자연스레 서재로 향한 베른하드는 커튼을 치고 굳게 닫혀있던 창을 열었다. 날이 많이 풀려서 열어 놓아도 괜찮을 것이었다. 레지먼트 뒤편 숲의 향기가 확 퍼져왔다.
참으로 요망하기 그지 없다. 외로움이란 것이
어째서, 지금. 잘 참아왔다고 생각했다. 베른하드는 뒤돌아 서재를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밝게 비춰진 서재 안에는 흰 먼지가 둥 떠다니며 그 생각을 어지럽혔다. 선반 위로 먼지가 쌓여 있었다. 손으로 닦아내면 까맣게 묻을 정도로, 베른하드는 얼마나 자신이 이 곳을 찾지 않았던 건지 생각했다. 탁, 손을 털어낸 베른하드가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왜 이곳을 찾지 않은건지 떠올리다 다시 사그라졌다. 나가자. 저도 모르게 중얼 거리며 고개를 들자 익숙한 제목이 눈에 띄였다. 아, 그는 저도 모르게 그 책에 손을 뻗었다. 그때 에바리스트가 말한 책이었다. 정확히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몇 번이고 강조했던 책이라 기억하고 있었다. 베른하드는 그것을 집어 들었다. 역시 먼지가 많이 쌓여있었다. 성기사 이야기 라는 꿈에 부푼, 한땐 정말 그럴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사람이 있었다. 베른하드는 머리가 찌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책을 펼쳤다. 어린 애들이 보라고 만든 듯한 그림에 베른하드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정말, 너다운. 베른하드는 거기까지 생각하곤 손을 멈췄다. 유난히 책 사이가 벌어져 있는 곳이 있었다. 뭐지,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알면서도 모른척 했던건지도 모른다. 이 책은 열쇠야 베른, 그때 네가 그렇게 말했다. 난 무엇에 대한 열쇠인지 모른다. 알고 싶지 않았다. 잠겨 있던 보물 상자는 내가 직접 풀었다. 그렇다. 너는 풀렸고, 나는 찾았다. 근데 더 이상 무엇이 있다고, 베른하드는 책 사이 들어 있는 편지 봉투를 꺼냈다. 하얀 봉투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스륵, 봉투를 돌렸다.
‘Dear. 베른하드‘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비명소리가 가득하던 그 전쟁터에서 에바리스트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스승의 쓰러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뚝뚝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 내렸다. 어째서 였을까, 어째서 당신이어야 했을까. 아득히 멀어지는 그의 모습에서 다른 스승의 모습이 겹쳤다. 어째서, 어째서,
작전은 성공했다. 예상외의 피해가 있었지만, 상부는 그것으로 족했다.
프리드리히는 그 자리에서 즉사, 유품은 모두 태웠고 그가 있었다는 흔적은 그 이름 다섯글 자 밖에 남지 않았다. 이것이 에바리스트가 아는 전부였다.
another world 完
쌍둥이R4 네타 주의
몇 번이고 쓰고 지운 흔적이 있었다. 나중엔 지우는 것도 번거로웠는지 두 줄로 죽죽 그어버리고선 그 옆에 새로 쓴 흔적도 보였다. 다음말을 어찌할지 망설였는지 잉크의 색도 달랐고 글자의 크기도 미묘하게 달랐다. 그것뿐이었다. 동생의 유서는 별달리 특별할 것도 없었다.
다만, 알아볼 수 없게 흐려진 잉크 옆으로 자신의 이름과 마침표가 찍혀있었다는 것 외에는 간결했다.
그것이 베른하드를 더욱 미치게 하였다. 아무것도 없었다. 유서에는 정말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차마 말하지 못했던 그 감정까지 프리드리히는 끝끝내 숨기고 사라졌다. 어째서, 알고 있었는데! 베른하드는 유서를 들고는 서재를 빠져나왔다. 손에 있는 유서는 꼬깃꼬깃 접혀서 도저히 누군가의 편지라고 하기엔 힘들었다.
베른하드, 베른, 베른 형, 형, 베른하드! 베른!! 그는 이제 들려오는 환청에 미칠 것 같았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분명 프리드리히의 행동은 자신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형제 이상으로 가족 그 이상으로 좋아한다고 그 모든 언행들 전부.
쾅! 베른하드가 탁자를 내리쳤다. 위에 있던 컵이 넘어져 바닥으로 데구르르 떨어졌지만, 그 안에 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동생은 죽었다. 그것을 인정해야 할때가 왔다. 프리드리히는 그 어디에도 없다. 그것을 깨달아야 할때가 왔다. 프리츠는, 자신의 사랑스러운 동생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것을 받아들일 때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른하드는
손을 뻗었다. 소파 위에 앉아있던 프리드리히가 왜 하고 물어왔다.
“사라지지 말아줘”
프리드리히는 대답이 없었다.
“제발”
이것이 미친 환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베른하드는 구걸했다. 사라지지 말아줘,
자신의 비이상적인 집착임을 깨닫고도 빌었다. 내 옆을 떠나지 말아줘, 나한텐 이제 정말 너밖에 없어. 프리드리히, 프리츠 내 사랑스러운 동생아.
이제는 닿을리 없는데도 그 무릎에 얼굴을 묻고 소리쳤다. 사랑한다. 프리드리히
* * *
Dear. 베른하드
막상 유서를 쓰려고 하니 꽤 긴장되네. 안녕 베른하드. 안녕 형. 지금 베른은 작전수행중이라 내 옆에 없으니까 이런걸 쓸수 있는걸지도 모르겠어. 분명 베른은 내가 뭘 하고 있으면 뭐냐고 끝까지 물어봤을 테니까.
베른도 입대 초기에 유서 작성했지?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땐 현실감도 없었고 그냥 횡설수설 한것 같아서 다시 펜을 들었지. 그것도 베른만 보도록, 나 꽤 베른을 좋아하고 있다구. 물론 베른은 날 엄청 귀찮아 하는 눈치지만, 그것도 나 사랑해서 그러는거지? 다 알고 있어. 베른은 옛날부터 그런거 제대로 표현 못했잖아. 불쌍한 동생이 알아서 척척 맞춰줘야지 않그래?
막상 적으려고 하니까 무슨 말을 적어야 할지 모르겠다. 엄마 아빠 사랑해. 형 내가 많이 사랑해. 음...사실 이건 베른만 볼거니까 다른 사람 이름쓰기도 뭣한것 같아.
지금 베른이 작전수행중이라서 내가 유서 쓰는것도 웃긴것 같지만 베른은 나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니까 괜찮을거라고 생각해. 베른 만약에 베른이 이걸 읽게 된다면, 사실 되도록 이면 않읽었으면 좋겠지만... 읽게 된다면 ------사랑한다고, 베른.
나 없으면 그 심심이들이랑 꼬장부리는 영감탱이 들이랑 어떻게 견디고 있을래? 그나마 내가 있으니까 웃음꽃이 피는거지, 베른은 잘 웃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내가 있는게 좋잖아? 이걸 쓰고 있는게 웃기기도 하지만 난 베른이 이걸 읽지 않았으면 좋겠어. 물론 내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리야.
만약 아주 만약, 베른은 무시해 버렸지만 모든게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가면... 함께 살자. 소용돌이도 괴물도 없는 고향에서 마을을 재건하면서, 베른이 좋다면 아이자크나 에바리스트를 데려가도 좋을것 같아. 꼭 애들 부모가 된 느낌이지만 사람은 많을수록 좋잖아? 이런 레지먼트에서 사내들만 바글바글한건 사절이지만.
난 가서 뭘 하게 될까, 여기 노후자금은 나올까 모르겠네. 나오면 다행이지만 않나오면 끔찍하잖아. 이 나이 먹고 가서 다시 처음부터 일을 해야 하다니. 그러고 보니 우리 레지먼트 들어오기 전에 막노동도 꽤 했었는데, 그때가 좋았던것 같기도 하다. 괴물들이나 때려잡는 일생은 사절이라구, 적어도 마지막은, 음...마지막은...모르겠다. 난 그래도 베른 앞에서 죽었으면 좋겠다. 분명 들었다면 재수없는 소리하지 말라고 소리쳤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아무도 없는 곳에서 , 그래 혼자서 죽는것 보단 둘이 있는게 외롭지 않잖아? 그리고 베른이라면 융통성이 없어서 이 유서 못찾을지도 몰라.
중략
네가 이걸 읽었다는건 내가 죽었다는 소리겠지, 그리고 네가 살았을거란 소리일테고, 베른하드, 사랑하는 나의 형제여. 잘살아. 부러우니까
참고 문헌
폭풍의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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