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마지막 부탁-마지막
2.너의 의미-불꽃놀이
“마지막 부탁이야, 레시오”
그만, 레시오는 마음속으로 만 소리쳤다. 차마 그의 말을 방해하지 못하여 속으로 앓던 그 말을 내뱉지 못했다. 버스데이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헐떡이는 가슴을 부여잡고 다른 한 손으론 레시오를 붙잡았다. 버스데이의 몸은 이제 한계였다. 레시오는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랬다. 그랬기 때문에 이것이 진짜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를”
눈물이 얼굴을 타고 뚝 침대 위로 흘러내렸다. 한참이나 숨을 넘기지 못해 인상을 찌푸린 버스데이가 바짝 마른침을 삼키곤 웃었다.
“놓아줘”
버스데이는 자신에게 포기를 원하고 있었다. 자신을 죽여 달라고, 그만하라고, 본디 버스데이는 레시오에게 무언가 부탁한 적이 없었다. 장난삼아 이것 좀 부탁해, 라고 말한 적은 있어도 진짜로 그에게 부담되는 것은 하지 않았다. 그것이 레시오의 각오를 알고서 그러는 것인지, 모르고서 그러는 것인지 레시오는 알지 못했다. 차마 물을 수도 없었다.
그것을 지금 확신했다. 레시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버스데이와 눈을 맞췄다. ‘울지 마’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울다니, 나는 지금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 부탁이야,’ 그것이 레시오의 이성을 잡아끌었다. 아직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좀 더 약을 투여하면, 다른 수술을 하여 중재하면 살릴 수 있었다. 그것을 아는 듯 버스데이가 레시오의 손등을 툭 쳤다.
“고마워”
“레시오”
창밖을 바라보던 버스데이가 그를 불렀다. ‘왜’ 그쪽을 바라보지도 않고 대답한 레시오는 버스데이가 한숨 쉬는 소리에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다시 한 번 “왜 그래” 하고 묻는 말에 버스데이가 인상을 썼다.
“피곤해 보여서, 요즘 잠은 자는 거야?”
한손에는 책을 다른 한손에는 펜을 들고 있던 레시오가 그제 서야 눈 사이를 꾹 누르곤 작게 ‘어’ 하고 대답했다. 거짓말, 레시오 거짓말 안하기로 했잖아? 입술을 깨문 버스데이가 가까이 다가왔다. 링거가 흔들릴 때마다 레시오는 현기증이 날것만 같았다.
“괜찮아. 이 정도는”
“레시오”
“아직은...괜찮아”
창백하게 질린 버스데이의 입술을 손끝으로 꾹 누른 레시오가 다시 한 번 대답했다. 괜찮아.
“레시오 나는...”
그러고서 버스데이는 입을 꾹 다물었다. 하얀 병실과 하얀 옷 때문일까 눈에 띄게 창백해진 얼굴에 레시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서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 다음 대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결국 버스데이도 입을 다물었다.
어쩌면 기대하고 있었을 지도 모르고, 기적을 바랐을지도 모른다. 레시오는 아직도 그때 버스데이의 마지막 말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분명 놓아 달라던가 죽여 달라는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약속했잖아, 레시오는 버스데이의 옷자락을 붙잡고 소리쳤다. 아주 어릴 적 단순히 그를 구해주고 싶다고 맹세했던 그날, 내가 너를 지켜 줄 테니, 죽지 말라던 그 날. 죽지 않겠다고 대답한 것은 거짓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버스데이였으니까, 버스데이 자신은 곧잘 거짓말을 하더라도 나에게는 거짓말을 하게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으니까.
“정말 너무했어, 애써 부탁한건데 그렇게 매몰차게 거절하다니”
“애초에 들어줄 가치도 없는 부탁이었어”
“그 말은 좀 심한 거 아냐?”
“심한건 너지”
결국, 레시오는 버스데이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렇게 애원했는데도, 버스데이는 투덜거렸지만 레시오는 듣지 않았다. 버스데이가 의식을 잃자마자 정신을 차린 레시오가 수술을 거행했다. 부담감이 컸다. 실패할 확률도 높았고, 원래대로라면 절대 시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환자에게도 그의 보호자에게도 수술하는 자신에게도 손해가 큰 수술이었다. 그렇지만 버스데이는 레시오에게 환자이기 이전에 친구였다. 레시오에게 선택권 따위는 없었다.
마지막, 그것 때문이었다. 절대 용서 못하지, 자신이 미래에도 영원히 죽게 하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그렇게 쉽게 마지막을 말하다니, 어떻게 보면 오기였고, 어떻게 보면 욕심이었다.
“그래서 나를 원망해?”
앞서 걸어가던 버스데이가 멈춰 섰다. 모래가 발가락 사이를 파고들어 간지럽혔다. 버스데이는 하늘을 한번 쳐다보더니 이내 큰 한숨을 내쉬었다.
“원망한다고 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바다에 뛰어들게”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버스데이가 툭 내뱉었다. 그것이 들렸는지 안 들렸는지 레시오는 버스데이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다시 한 번 물었다. “원망해?” 몸을 뱅글 돌린 버스데이가 레시오를 마주봤다. 오랜만이었다. 이런 식으로 마주 본 건, 사실 파쿨타스 학원을 졸업하고 나서는 항상 옆에 있었기에 눈을 똑바로 바라볼 일이 없었다. 애석하게도, 죽기 직전에 빼고는 그랬다.
“내 부탁 안 들어준 대신, 다른 부탁이 하나 더 있어”
그럴 줄 알았어, 레시오는 혀를 쯧 차고는 뭔데, 하고 물었다.
“그때 나는 나를 놓아달라고 했지”
“....그랬지”
버스데이가 한 발자국 레시오 앞으로 다가왔다. 유난히도 모래 밟히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사박. 사박. 바로 앞까지 다가온 버스데이가 레시오의 옷깃을 잡아 쥐었다. 마치 어린 시절 그때 레시오가 버스데이를 붙잡았던 것처럼
“전언 철회야”
“.……”
“나를 좀 더 붙잡아줘”
버스데이가 다시 눈을 뜬 건 수술 후 나흘이 지나서였다. 천천히 눈을 뜨고선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불렀었다. ‘레시오’ 눈을 뜨자마자 제일 처음 찾는 것이 자신이라는 것을 기뻐해야 하는지 슬퍼해야 하는지 레시오는 알지 못했다. 다만, 그를 꽉 끌어안아 줄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지”
“.……”
“너와 마지막까지 함께하는 인간이라곤 나정도 밖에 없을 거야”
“…누가 할 소리를”
레시오는 다시 한 번 그를 꽉 끌어안았다. 그때와는 달리 따뜻하고 생기 있는 감촉에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나도 부탁하나 해도 될까”
남자 둘이 해변에 이러고 있는 거 누가 보면 오해할 거야, 버스데이가 우스갯소리로 대답했다.
“마지막이라고…제발하지 말아 줘”
“……”
“대답”
“응, 알겠어.”
그제야 왈칵 터진 눈물에 한참이나 레시오를 달래준 버스데이는 결국 차 안에서 잠들었다. 마지막이야, 마지막 부탁. 레시오는 아직도 그날의 버스데이를 떠올리면 눈물이 차올랐다. 그때의 버스데이는 진심이었을 것이다. 아마 고맙다는 그 말까지도. 고맙다고 해야 하는 것은 오히려 자신이었는데도, 고마워. 그가 깨어있을 때는 절대 하지 못할 말을 레시오는 마음속 깊숙이 집어 삼켰다.
'2D > 하마토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레시버스 트위터 썰 백업 (0) | 2015.03.21 |
---|---|
하마토라 전력 ~11/8 (0) | 2015.01.03 |
레시버스 kiss the rain (0) | 2014.10.11 |
하마토라 전력 60분 ~9/19 (0) | 2014.09.24 |
레시버스 3 (0) | 2014.09.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