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피스토 펠레스는 본인의 입으로 잘도 말하고 다니긴 하지만 감히 영겁의 세월을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로키.” 그다음에는 “트릭스터”, 아 그리고 확신할 수 없지만 “레이븐”이라는 이름도 사용해왔던 것 같다. 이렇듯 수많은 사람의 이름을 빌려 수많은 생을 살아왔고, 그 수의 배가 되는 인간과 만나왔지만, 메피스토 펠레스는 그들 중 그 누구에게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껴볼 수 없었으니 실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인간은 주로 세 가지 욕구로 살아간다고 한다. 첫 번째는 “물욕” 금전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물욕은 사람에게 꼭 필요하고 해결되지 않으면 죽어버리니까. 두 번째는 “성욕” 이쪽도 지극히 심플. 자손을 남기고 늘리지 않으면 절멸해 버리는 것이 인간이다. 마지막 세 번째 “사랑.”」
「네에에에?」
후지모토 시로의 말에 메피스토는 금세 질린다는 얼굴을 했다.
「사랑? 후지모토군 제가 누군지 알고 하는 말입니까?」
「악마잖아.」
「그래요! 악마. 사랑 따위는 집착이라고 논하는 것이 악마입니다.」
「그래서 너희들은 안 된다는 거야.」
그게 무슨 뜻이죠? 아기자기한 컵을 들고 있던 메피스토의 얼굴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평소에는 넉살좋은 얼굴로 이리저리 장난을 치면서도 가끔은 한없이 무시무시한 존재가 그였다. 하지만 후지모토 시로에게는 제외. 그는 메피스토가 아무리 험악하게 얼굴을 구겨도, 낮은 목소리로 협박해도 겁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준비한 소파에 앉아 읽고 있던 책을 덮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인간에 대해 말해달라고 한 건 너야.」
「하지만 너무 말이 안 되는 걸요.」
메피스토가 말끝을 길게 늘어트리며 혀를 삐죽 내밀었다. 단단히 삐친 모습에 후지모토는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사람 바쁜데 와서 책이나 읽어달라더니 이번에는 이해까지 시켜달라는 거냐?!」
확실히 후지모토 시로는 바쁘다. 정십자 기사단에 인정받은 하나밖에 없는 팔라딘 이었으니 어디에서든 그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많았다. 또한 메피스토만큼 그를 잘 구슬리고 그의 지위에 도전하는 자도 없었으니 시로는 메피스토가 말하는 데로 그저 질질 끌려올 수밖에 없었다.
오늘만 해도 그랬다. 작전이 끝나고 담벼락에서 담배 한 대 태우고 있던 시로의 뒷덜미를 갑자기 잡아채더니 자신의 방으로 끌고 와 책을 읽어 달라고 하다니. 시로는 계속해서 울리는 휴대폰을 무시한 채 소파에 길게 누웠다.
「후지모토군?」
「잘 거야.」
「전화 옵니다만.」
「네가 처리해. 네 탓이잖아!」
이런. 메피스토는 웃으며 시로의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을 꺼내 받았다. ‘네 메피스토 펠레스입니다.’하는 말에 놀란 상대방의 목소리가 시로의 귀까지 들어갔는지 어깨가 들썩이는 게 보였다. 흐음. 나름 그를 불러내기 잘했다고 생각하는 메피스토는 금세 코까지 골며 잠들어 버린 시로의 위로 캐릭터 담요를 덮어주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아마 한참이나 저러고 깨어나지 않을 것이다.
☆★☆
「인간의 세 번째 욕구! 그것은 바로 지식욕이죠!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원하는 가장 강력한 욕망인 겁니다.」
시로가 마시던 커피를 질질 흘리며 메피스토를 쳐다봤다.
「난 그렇게 똑똑하지 않아도 상관없는데.」
써. 커피에 각설탕을 집어넣으며 시로가 대답했다. 메피스토는 그런 시로의 모습을 보며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말했다.
「말도 안 됩니다.」
일주일 후에 다시 오겠다는 게 이런 말이었나. 시로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요즘 부쩍 눈 밑에 검은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었다.
「누구나 자기가 제일 똑똑하고 아무도 아직 얻지 못한 지식을 자기만이 손에 넣는 우월감에 빠지고 싶을 텐데요?」
「…….」
「최신 뉴스나 트렌드를! 사랑스러운 상대의 모든 것을! 다음 주 애니메이션 뒤편 내용을! 이 골목을 꺾으면 어디로 이어져 있는 걸까! 이 앞에 있는 답을 알고 싶다!! 그 근원적 욕구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대량의 지식을 천박하게 탐닉하며 살아가는 것 아닙니까?」
「그건…」
뚝 끊긴 말의 다음 말 역시 궁금했다. 메피스토 펠레스는 확신했다. 고작 “사랑” 따위가 아니라 “지식욕”이야 말로 완전한 인간의 욕구라고, 그것이 있어야 비로소 인간은 완전해진다고.
「너겠지.」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메피스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시로를 빤히 내려다봤다.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던 시로는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일이 있어서. 시로가 열쇠를 사용하려는 것을 보고 메피스토가 그를 붙잡았다.
「무슨 일이요? 오늘은 쉬라고 했을 텐데.」
「…그것도 그 지식욕인가 뭔가냐?」
결국, 손을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펠레스.」
‘펠레스.’ 그것이 자신의 이름이라고 인식하는데 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넌 너무 생각이 많아.」
「…….」
시로는 간단히 “아들 때문에.”라고 말하곤 자리에서 벗어났다. 이 침묵을 그는 무엇이라 받아들였을까. 무엇이라고 생각했을까. 결국, 그것은 알 길이 없게 되었다.
그날 밤 후지모토 시로는 살해되었고, 메피스토 펠레스는 오쿠무라 형제의 후견인이 되었다.
그의 장례식장은 가지 않았다. 그것은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다. 지식욕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가 후지모토 시로를 붙잡은 것은 지식욕 따위가 아니었다.
하지만 사랑은 더더욱 아니었다.
마지막에 끝내 ‘시로.’라고 불러주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쉬웠지만,
그것이 끝. 메피스토 펠레스가 그 이상 사랑이라는 감정을 입에 내는 일은 없었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