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가 마장을 받은 것은 아주 어린 시절이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 그날의 소리도, 냄새도, 시야조차 알 수 없는 안개 속에서 소년은 몸이 찢겨나가는 고통을 견뎌야 했다. 그것은 괜찮았다. 고통은 익숙했으니까. 오래전부터 소년의 집안은 대대로 무술가 집안이었다. 고된 훈련은 언제나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견딜 수 없는 것은 눈앞에서 일렁거리는 푸른 불꽃이었다.
류는 제 머리칼의 색을 지독히도 싫어했다.
날개뼈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은 때때로 밀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번거로웠지만 류는 절대 그것을 자르거나 하지 않았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자기학대로 보이기까지 했는데 류는 그런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계집애 같다느니 같은 말을 들어도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물론 때려눕힌 적도 많았다. 하나하나 신경 쓰자니 너무 끝이 없었고, 모두 무시하자니 방해물이었다. 류는 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었다. 아직 어리다 할 나이에 상급엑소시스트라는 것은 물론 대단하다고 생각할만한 일이나 류는 만족하지 못했다. 좀 더 강해져야 했다. 좀 더 큰 세상을 봐야했다. 일본지부를 방문한 것은 그런 이유도 없잖아 있었다. 흥미를 끄는 것은 메피스토 펠레스라는 인물이 감싸고도는 소년이었다.
푸른 불꽃을 자유자재로 쓸 줄 안다는, 말이 좋아서 소년이었지 류는 그를 인간취급해줄 생각이 없었다. 모든 것을 삼켜 버릴듯한 푸른 불꽃과 눈동자. 류는 그것이 제 자신마저 삼켜버린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뜻밖에 인간적이었고…때때로 아주, 아주 류를 미치게 만들었다. 그것은 절대 희망이 아니었다. 류에게 그것은 절대 희망이 아니었다. 동시에 절망도 아니었다. 그것은 어떠한 “비참함.”이었다. 오쿠무라 형제를 본 순간. 그 가족이라는 형태를 본 순간. 그 푸른 불꽃도 가족이라는 것을 가지고, 인간답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본 순간. 너무 앞만 보고 달려온 제 자신이 불쌍하고, 안타까워서 어찌할 바를 찾지 못했다.
“……”
밤의 기차 아래에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았다. 일본의 중심이라고 불리는 이곳도 결국엔 어둠에 삼켜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가로등의 불빛만이 간간이 창가를 스쳐 지나갔다. 류는 제 손을 잡고 인사를 하던 사람을 떠올렸다. 안경 너머로 따뜻한 초록 눈을 가진 아이였다. 그는 악마인 형을 가진 동시에 인간이었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 중1급 엑소시트라, 류는 잠시 제 어린 시절을 상상했다.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뻔히 나오는 시나리오에 실소를 터트렸다. 불쌍하고, 안타깝고, 비참한 인생을 산 사람은 자신뿐만 아니었다. 아샤와 게헤나의 게이트가 열린 이상. 사탄의 자식이 인간과 함께 싸우는 이상. 제 어린 자식들을 어쩔 수 없이 혹은 강제로 엑소시스트로 만드는 세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 제가 죽고 나서도 계속될 운명의 수레바퀴 같은 것일 테다.
“오쿠무라.”
유키오라고 했던가. 류는 그런 그가 불쌍해서, 안타까워서 그리고 저와 같은 길을 걸을 그가 너무나도 비참해서 창문에 뺨을 비볐다. 차가운 기운이 피와 함께 온몸을 빙빙 회전하는 것 같았다. 입술을 꾹 깨물었다. 더 이상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창문 안쪽으로 비가 툭 내렸다. 그것은 아무것도 적시지 못한 채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