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N님(@JN_aoex) ->화이트데이를 보내는 린
새벽부터 부엌에서 달짝지근한 냄새가 퍼졌다. 유키오는 눈을 비비고 일어나 대충 안경을 쓴 뒤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네시. 아직 한참 자고 있을 시간에 누가 이 소동을 벌이는 것인지는 안 봐도 뻔했다. 유키오는 밀려오는 두통에 서랍에서 약을 꺼내다 말고 코로 들어오는 달달한 냄새에 몸을 옮겼다.
“……형.”
등 뒤에서 들려온 스산한 목소리에 린의 꼬리가 펄쩍 뛰었다. 무,무슨 일이야? 하고 제 뒤로 냄비를 숨기려 들었지만 이미 소용없었다. 유키오는 피곤한 얼굴로 린에게 부탁했다.
“아침 부탁해.”
“그,그럼 형에게 맡겨둬!”
황급히 쌀을 씻고 다른 냄비를 불에 올리는 린을 보며 유키오는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한참을 아침 준비를 하던 린이 고개를 빼꼼 내밀어 유키오가 사라진 복도를 쳐다봤다. 혹여나 제 동생이 자신 때문에 시간을 착각한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꼭두새벽에 아침밥을 차려달라고 하다니. 린은 유키오 몫의 아침을 준비하곤 설탕이 가득 담긴 냄비를 졸이기 시작했다. 어쩐지 손놀림이 빨라졌다.
한참 후에야 말끔한 모습으로 나타난 유키오는 교복이 아닌 엑소시스트 제복을 입고 있었다. 어찌된 일이냐고 물어보니 다른 손으로 젓가락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론 밥그릇을 잡은 유키오가 쳐다도 보지 않고서 “출장.”이라고 말했다.
“흐음 출장…어디로?”
“오사카.”
“멀잖아!”
린이 놀란 눈으로 다가오자 조심스레 밥그릇을 내려놓은 유키오가 입을 닦아내며 말했다.
“그래서 이틀정도는 못 들어올 거야.”
“형은 허락 못해!”
린의 말은 듣지도 않고서 자리에서 일어난 유키오가 물을 마셨다.
“사고치지 말고, 슈라씨 말 잘 듣고 있어.”
“유키오.”
린이 제발 자신도 데려가 달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유키오는 단호히 린의 시선을 잘라먹고는 등을 돌렸다.
“선물 사 올게.”
“오늘 오쿠무라군이 기분이 영 별로구먼.”
시마의 말 대로였다. 오늘 자신은 기분이 별로였다. 얼마나 안 좋으냐고 하면 교토에 출장을 갔을 때 단체사진 뒤에 적힌 사탄이라는 글자만큼 기분이 좋지 않았다. 물론 그때는 아주 잠깐이었지만. 별로 안 좋을 일도 없었는데 유달리 그랬다. 어쩌면, 그래 어쩌면 이런 일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쿠무라군? 오늘 유키오가 안와서 그런데 이 사탕 좀 전해줄래?”
바로 이런 일.
분명 화이트데이는 남성이 좋아하는 여성에게 사탕을 주는 날이었다. 그런데도 수많은 여학생들은 유키오가 아프다는(표면상으로지만) 말 하나에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사탕을 모조리 린에게 맡겨 버렸다.
크윽. 린은 자신의 책상 위로 수북이 쌓인 사탕을 보며 이를 갈았다. 유키오 녀석의 어디 가 그렇게 멋있다는 건데! 훈련도중에 푸른 불꽃을 내뿜자 그만 슈라에게 얻어맞고 나서야 린은 화를 가라앉혔다. 그 귀염성 없고, 형의 말도 안 듣고, 얼굴에 점은 세 개나 있는데. 린은 투덜거리며 주머니에 있던 사탕을 친구들에게 뿌리며 한숨을 쉬었다. 중간에 스구로가 뭐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린은 듣지 않았다. 지금 그의 온 신경은 유키오에게 가 있었다. 이틀 동안 못 보는데 그렇게 쌩하고 갈 것까지야... 린은 거기까지 생각하다 그만 고개를 푹 숙였다. 더 이상 생각해봐야 머리만 아팠다.
“저…린 이거 유키오에게 줄래?”
이런. 뒤에서 탄식이 들린 것은 제 착각이 아니었을 것이다. 린은 오늘도 예쁘게 웃는 시에미를 보며 눈물을 줄줄 흘렸다. 평생 친구선언을 하고나서 린은 묘하게 시에미를 대하기 어려웠다. 가슴 한편이 무너지는 느낌 이라는 게 이런 걸까. 린은 유키오에게 전해달라는 부적을 손에 들고서 한숨을 쉬었다.
“위험한 작전이라고 해서…”
“응. 고마워. 그 녀석도 고마워 할 거야.”
린은 애써 입 꼬리를 비집어 올리며 대꾸했다.
“그리고 이런 린꺼!”
그리고 린의 다른 한 손에 쥐어진 작은 사탕봉지가 눈에 들어왔다. 린은 사탕봉지와 시에미를 번갈아보더니 몇 번이고 나? 하고 되물었다. 시에미는 활짝 웃으며 당연하지. 하고 말했고, 금방 위치가 바뀌었다고 생각은 했으나 그런건 아무래도 좋았다. 다시 봄이 올것이라고 린은 확신했다.
“그리고 이건 이즈모 꺼.”
시에미가 품에서 다른 사탕을 꺼내기 전까지는
“이건 스구로군이랑 시마군이랑 코네코마루…”
학원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유키오는 눈을 감았다. 푹신한 의자에 몸을 깊숙이 눌러 넣은 후 안경을 벗어 눈가를 꾹꾹 누른 유키오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눈을 떴다. 이대로 자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돌아가면 바로 보고서를 작성해서 올려야 했고 내일 수업준비도 해야 했으며 학교생활도 있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몸은 지금이라도 당장 달큰한 잠에 빠지지 못해 안달이었다.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창밖은 이미 까만 어둠에 잠겨 있었고, 간간이 켜져 있는 가로등만이 창문 위를 비추고 있었다.
형에게 전화를. 거기까지 생각한 유키오는 제 품에 있던 휴대폰을 꺼내려다 비닐이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숙여 손안에 잡힌 것을 보았다. 투명하고 반질반질한 봉지 안에 쌓여있는 새파란 사탕. 아, 그러고 보니 화이트데이랬던가. 그것도 이미 시간이 훌쩍 넘어버렸지만. 손안에 굴러다니는 사탕을 까서 입에 넣으니 달콤한 딸기향이 가득 퍼졌다. 뭐야, 색은 파란색이면서. 유키오는 제 형이 만든 엉터리지만 그 맛만은 확실한 사탕을 입안에서 굴리며 작게 웃었다.
happy white day Okumura
'2D > 청의 엑소시스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의 엑소시스트 연성계모임 연성 5주차 (0) | 2015.03.29 |
---|---|
청의 엑소시스트 연성계모임 연성 4주차 (0) | 2015.03.25 |
청의 엑소시스트 연성계모임 연성 1주차 (0) | 2015.03.15 |
린시마 (0) | 2014.09.18 |
2011~썰정리 (0) | 2014.08.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