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색 머리를 질끈 묶은 시마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새삼 자신의 이마 및 상처를 들췄다. 여자아이의 얼굴에 난 상처는 보는 사람에게 끔 동정심을 유발하기 충분했고, 시마는 동정심이 싫었다.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들은 모두 무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처를 숨기지 않는 것은 작은 이기심 때문이었다. 똑같을 수는 없지만, 당신도 조금은 이 아픔을 느껴보라고, 복수 같은 건 아니었다. 단지 보여주고 싶었다. 이게 내 증표다. 이게 내 삶의 이유다. 이것이 나를 여자가 아닌 하나의 사람. 시마 렌조로 보아야 하는 이유였다.
“도련님. 좋은 아침.”
“시마냐.”
단정히 교복을 입고 머리띠를 둘러쓴 스구로는 불량해 보이는 염색과는 다르게 성실한 사람이었다. 성적도 늘 상위권에 있었고, 성격도 좋았다. 그래 성격이 너무 좋아서 탈이었다. 이 착한 사람이 대체 어떻게 사탄을 죽이고, 악마를 멸하겠다는 걸까. 옆에 있어줘야 되겠다고 생각한 순간은 언제부터 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시마가는 태어나면서부터 운명은 정해져 있었고, 자신 역시 그랬다. 이 상처를 입은 것 역시 정해진 수순이었다. 그의 부모님은 그가 평범한 사람이 되기를 원했지만 스구로는 그러지 않았다. 시마가 도쿄로, 정십자 학원으로 입학이 결정난 순간 그랬다. 책임을 지고 싶어 했다.
「미안하다.」술에 취하여 몸을 가누지 못하는 스구로가 시마를 보며 말했다. 왼쪽 이마에서부터 눈까지 길게 이어진 상처를 쓸어내리던 손이 중력을 견디지 못하고 푹 꺼졌다.
“그 짐은 다 뭐야?”
“아. 이거 반장이 부탁을 해서요.”
“이리 줘.”
“어. 자,잠깐.”
자신의 손위에 있던 책들을 모조리 뺏어든 스구로를 보며 시마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묵묵히 걸어가는 그의 뒤를 따라가며 시답잖은 얘기를 하자 작게 웃어 보인다. 시마는 이 일상이 좋았다. 이런 생활이 영원히 계속됐으면 좋겠다고, 그런 부질없는 상상을 하며 옷을 갈아입었다. 아직도 몸은 상처투성이였다. 하얀 피부 위로 죽죽 그어진 상처들이 그간 얼마나 그녀가 싸워왔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이 세계는 여자던 어린애이던 노인이던 살아남는 것이 최선인 세계였다. 여자라서 상처를 입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그저 시마는 스구로를 지키고자 했을 뿐이다. 사과를 들을 일이 아니었다.
여자잖아. 여자라서, 여자니까. 스구로는 그 말이 시마를 얼마나 상처 입혔는지, 또 얼마나 설레게 하는지 모를것 이다. 평생 몰라야 했다. 당신은 그저 앞만 보고 걸어가면 된다. 발밑에 몇 개의 시체가 밟히던 그저 묵묵하게 돌아보지도, 고개를 숙이지도 말고. 설령 내가, 자신의 충직했던 부하가, 친구가 적으로 돌아서는 한이 있어도 그는 그래야 했다.
「이제부터는 인간을 죽이지 않으면 이길 수 없을 거야.」
찢어지는 비명이 들렸다. 오열과도 같았다. 내 이름을 부른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시마가 그것을 아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까맣게 물든 시야에서는 단 하나의 빛도 보이지 않았다. 그 끝은 죽음과도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