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신우-여장주의
프랑신우
2011/06/09
때는 바야흐로 축제의 계절 그건 사립 예란 고교라도 피할 수 없었다.
"익한아 여기봐~"
"수이야! 너무 잘 어울린다!"
특히 예란고는 꽃미남 꽃미녀가 집합해 있는 곳 아니던가, 웬만한 학생 역시 연예인 뺨치게 잘생겼으니 그 무엇인들 어울리지 않을까. 카메라 세례를 받고 있는 익한이와 수이를 보면서 윤아는 작게 웃었다. 인기 좋네 두사람. 그런 윤아를 보고서 신우는 남말하시네 하며 웃었다.
확실히 짧은 머리를 하고서 바지를 입은 윤아는 누가 봐도 미소년이었다. 만약 자신이 진짜 여자였으면 고백할지도 모른다. 그것보다. 신우는 고개를 천천히 돌리며 라이를 돌아보았다. 도대체 왜! 어째서! 그 흔한 앞치마 하나 안 입고서 당당히 앉아 있는가?! 하고 물었더니 어느 여학생이 -라이는 존재만으로도 빛이 나잖아- 라고 해서 기각됐다. 새삼 프랑켄의 능력이 참 편리하다고 느끼는 라이였다.
신우는 여학생들이 참 대단하다고 느끼는 순간이었다. 아무리 손으로 끄집어 내려봐도 내려오지 않는 교복 치마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랴, 메이드복에 간호사복을 입고 있는 익한이와 레지스를 보며 자신은 양호한 편이라고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나마 교복은 양호한 편이었다. 언뜻 보면 게이처럼 보이는 저 옷들을 자신이 소화해내기에는 무리였으니까 그나마 교복이 나았다.
신우네 반은 카페였는데 적은 돈으로 꽤나 큰 수익을 낼 수 있어서 훨씬 이득이었다. 무엇보다 다른 반 보다 평균 외모가 높으니 자연스레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학교축제는 개방적이라 예란고 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에서도 학생들이 오니 더더욱 이득이 날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람이 몰리면 싸움이 일어날 것이 뻔했고, 그렇다면 축제는 중지될게 뻔했다. 하지만 이번에 늘린 경비 덕분에 소란은 잦아들고 있었는데…
"왜,왜이러세요.."
친구들의 놀림과 질타를 받으며 간간이 주문을 받던 신우는 이상한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사람이 북적거리는 곳에서도 왠지 모르게 싸움이 일어날듯한 소리는 크게 들리지만, 문제는 달랐다. 메이드복을 입고 있던 익한이는 누가 봐도 소녀였으니 찝쩍대는 녀석들도 적잖아 있었는데 모두 익한이 남자 인 것을 알고 떨어져 나갔지만, 그중에는 남자인 것을 알고도 달려드는 무리가 있었다. 아주 질 나쁜 무리인데 어떻게 들어온 건지 몰라. 신우는 투덜거리며 손에 들고 있던 메뉴판을 던졌다.
퍽. 굵고 짧은소리를 내며 익한이를 붙잡고 있던 녀석의 뒤통수에 메뉴판이 박혔다.
"여긴 돼지우리가 아니라 나가줘야겠어."
물론 치마를 입고 있어서 별 폼이 나진 않지만 상대방은 신우를 금방 알아보고서 짜증난다는 듯 익한이의 손을 놓았다.
"한신우…설마 여기서 우리를 이기려 드는 건 아니지?"
상대방이 몇이든 신우에겐 별 상관없었다. 그들은 그저 인간이었으니까. 다만 여기가 교실이고, 축제라는 것을 빼면. 반에 결코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작은 피해는 나올 것임을 예상한 신우는 장소를 바꾸고 싶었지만, 상대방이 쉽게 응할 것 같지 않았다.
"시간 없으니까 간단하게 끝내자. 한꺼번에 덤벼"
일제히 덤벼드는 녀석들은 확실히 약했다. 주먹 몇 번에 픽픽 쓰러지는 녀석들을 제쳐두고 뻣뻣하게 서있는 녀석에게 발차기 한방 먹여주려는데 뭔가 뻑뻑하니 다리가 안 뻗어진다 싶었다.
"신우야 너 지금 치마 입었잖아!!!"
익한이의 외침 아닌 외침을 듣고서 순간 속도가 느려짐과 동시에 신우의 배에 상대방의 무릎이 차고 올라왔다. 쾅! 책상 몇 개와 부딪치며 뒤로 나가떨어진 신우를 보고서 라이가 도와줄까 일어섰지만 신우는 됐다는 듯 손을 뻗었다. 몇 번 기침을 하고서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난 신우는 웃고 있었다.
"한 방 먹었네"
재밌다는 듯 웃던 신우는 배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이번엔 안 봐줘. 찌이이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안 그래도 짧은 치마를 쭉 찢어냈다. 벗을 순 없으니까 라고 생각한 신우는 그대로 상대방에게 달려들어 턱을 걷어찼는데 제대로 들어가지 않은건지 상대방이 다시 자세를 잡았다. 썅 소리 나오는걸 집어삼키고는 웬만해선 하고 싶지 않았던 킥을 날렸다. 이번엔 제대로 들어갔다. 상대방은 퍽 소리와 함께 뒤로 슬슬 물러나더니 그대로 꼬꾸라졌고, 신우는 치마를 탁탁 털더니 자세를 고쳐 잡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익한이 슬슬 다가오더니 앞을 슥 가리는 거였다. 왜? 왜왜왜? 신우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익한이를 보고서 비키라고 했지만 익한이는 그럴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치마를 입고 하이킥을 날리면 어떡해?!"
아하. 신우는 이제야 알았다는 듯 웃었다. 차라리 벗는 게 나았으려나, 신우는 괜찮다는 듯 치마를 슥 들어올렸다.
"괜찮아. 안에 반바지…"
"올리지 말라니까! 넌 괜찮을지 몰라도 내가 안 괜찮아!"
익한이 괜히 호들갑을 떨면서 말했다.
"야, 사람 말을 끝까지 들어야지"
"아뭐어!
"안에 반바지 입었다고"
치마를 슥 올리면서 말했다. 아아, 그렇구나, 익한은 괜히 자기만 호들갑 떨었다는 걸 알고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 넌 그런 데에서만 철두철미하더라. 익한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하자 신우가 비웃었다. 하지만.
"신우야!!!"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소리친 윤아는 두 뺨이 새빨개진 채로 있었고, 그 둘의 대화를 제대로 듣지 못한 나머지 학생들은 교실에 찬바람이 쌩 불도록 침묵이 이어졌다.
"내가 뭐 잘못했어? 응? 라이?"
아무것도 묻지 말라는 듯 라이는 그저 고개를 돌렸다. 물론 다 듣긴 했지만.
2. shall we dance?
해가 저물어갈 때쯤 축제는 끝을 달리고 있었고, 마른하늘에서는 때아닌 비가 주륵주륵 내리기 시작했다. 결국 운동장에서 강당으로 자리를 옮긴 학생들은 더더욱 축제를 즐기기 시작했다. 워낙 연예인이니 뭐니 많은 학교라서 축제 공연 또한 만만치 않았다.
결국 옷을 갈아입은 신우는 텅 빈 복도를 돌아보았다. 이제 와서 강당으로 갈 수도 없고, 마땅한 파트너도 없으니 그냥 교실에 있자는게 신우의 생각이었다. 예란 고교의 마지막 피날레는 댄스 타임이었는데 아마 이 시간쯤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실 꼭 파트너가 여자여야 한다는 규칙은 없었다. 남학생들이 더 많을 뿐 아니라 별로 친하지 않은 상태에선 친한 친구끼리 짝을 지어서 하곤 했으니까. 꼭 춤을 추어야 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작년까지만 해도 윤아와 함께 춤을 추었지만 올해는 안될 것을 아니까. 자신의 부질없는 짝사랑이라는 걸 깨달았으니까.
강당에선 꽤 큰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으나, 빗소리에 울려 미약하게만 들려왔다.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 교실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라이가 있었다. 이번에 자리를 바꾸어 창가 자리를 차지한 라이는 종종 밖을 내다보곤 했다. 카페를 한다고 책상의 절반을 빼놓은 교실은 정말로 적막했다. 뚜벅 뚜벅 걸어갈 때마다 빗소리에 울렸으니까. 자연스레 라이의 앞에 앉은 신우를 보고서 라이는 신우를 살짝 돌아볼 뿐이었다.
"라이는 춤 안 춰?"
"……."
"기다리는 여자애들이 꽤 있던데, 실망하겠네"
신우는 키득키득 웃었다. 생각해보니 라이가 누군가와 춤을 춘다는 게 어울리지 않았다. 노래라면 또 몰라. 아니 춤이라는 것 자체와 라이를 붙여놓은 적이 없어서 더욱 웃겼다. 라이는 살짝 돌아보더니 입을 열었다.
"신우"
"응?"
"…춤출까?"
라이의 입에서 나온 건 꽤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춤이라니 그것도 음악도 없는 교실에서 그것도 남학생 둘이서, 왠지 라이는 왈츠풍인데, 신우가 이해하지 못한듯하자 라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이건 아마.
"shall we dance?"
"…내가 여자 역할이야?"
"……."
"of course."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춤을 춘다…라. 꽤 낭만적이지 않은가 다만 상대가 남자라는 걸 빼면, 마주 잡은 두 손이 살짝 아팠다. 손을 데인 걸까. 얼굴을 찡그리자 라이가 왜 그러냐는 듯 물어왔다.
"…아니…설마 내가 여자역을 할거라곤 생각도 못 해서"
"괜찮다. 어차피 춤에서 역할이라는 건 형식상의 이야기일 뿐이야."
살짝 웃는 라이를 보고서 여자애들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자식이 잘생기긴 했어. 그렇게 생각하자 또 웃겼다. 이 학교에서 라이와 제일 친한 것도 자신이고,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도 자신이었으니까. 그보다 더 웃긴건 자신이 이 학교에서 라이와 첫 댄스 파트너라는 것이다.
허리를 감아오는 팔을 느끼고서 라이가 좀 더 커 보였다.
"신우…"
라이의 말에는 힘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라이는 꼭 사람을 불러 놓고서 바로 말하지 않는 습관이 있다. 그것이 자신에게 한정된 건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건 꼭 시험지를 앞에 엎어 두라는 소리 같았다.
"좋아해. 라이."
"……."
"오늘 네가 더 좋아졌어."
"……나도 그래."
내일은 좀 더 좋아졌으면 좋겠어.
3. of course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이 쏟아지는 빗소리에 삼켜져 버릴 것만 같았다. 아니 차라리 삼켜져 버렸으면 이대로 흔적없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몇 번이고 스탭이 엉키고 넘어 질뻔한 걸 라이가 붙잡았다. 희고 긴 손이 악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라이는 모르는 곳에서 사람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그 손이 허리를 붙잡고 손을 꽈악 잡아 쥘 때마다 뼈마디가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결국 라이의 발을 밟고서 그 위로 넘어졌다. 의외로 라이는 버티지 않고 그대로 뒤로 넘어져 버렸다. 축제라고 책상을 치운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신우가 라이를 덮치는 듯한 자세가 되어 버려 얼른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려고 했다
"라이 …놔줘"
흰 피부에 붉은 눈 미치도록 아름다운 외모에 빠져들 것만 같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아직 고백에 대한 답을 듣지 못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미치도록 창피하고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라이는 그런 신우를 잡아당겨 자신의 가까이에 오게 했다. 상체를 살짝 일으킨 라이는 다른 한 손을 신우의 허리를 붙잡았다. 그리곤 이마 눈 코 입, 숨이 멎도록 야릇한 손짓에 신우의 뺨이 붉게 물들었다.
"……."
"……."
"…라이…애들이 올 거야."
"상관없지 않아?"
"그렇지만…"
"애초에 춤만으로 끝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잖아?"
겹쳐오는 입술 위로 단맛이 났다. 비가 와서 교실 안으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숨을 쉬고 싶어도 머리를 잡고서 놔주지 않는 라이 때문에 이대로 숨이 막혀서 죽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아니 그전에 라이는 생각보다 훨씬 능숙했다. 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온몸을 눌러버리는 듯했다. 이러다간…진짜 애들이 보겠어!! 한 손은 잡혔고 나머지 한 손으로 라이의 어깨를 밀어내자 의외로 순순히 밀려난 라이는 그대로 신우를 눕혀버렸다. 아까와는 반대자세가 돼버리자 당황한 신우가 라이에게 STOP!!!을 외쳤지만 라이는 듣지 않았다.
"진짜 애들이 본다니까!!"
"…뭐 어때"
"아니…아니지 라이!"
"좋아하는 사람과의 관계도 다른 사람의 허락을 맡아야 하는가?"
"뭐?"
"하긴…너희 인간들은 유달리 다른 사람의 눈을 신경 쓰니까 하지만 걱정하지 마 여긴 아무도 못 와."
잠깐 라이. 잠깐.
"날 좋아해?"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과 이런 짓을 할 정도로 나는 비위생적이지 않아."
머릿속에 있는 게 한꺼번에 폭발한 듯 펑하고 터져버렸다. 안돼하면서도 맞닿은 입술을 뿌리치지 못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쪽이 훨씬 큰 것 같았다.
설마 춤만으로 끝날 거라는 생각 따위 애초에 하지 않았다.
2011/08/28
골목길을 돌아서는 신우는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더이상 가면 위험하다는 것을 직감이 알려줬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라이집에서 한참 놀다가 돌아가는 길이었을 뿐이다. 골목길을 돌아 걸어가는데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같은 방향인가 보지 하고 지나쳤을 것을, 그 발걸음 소리가 매우 작아서 마치 누군가를 미행하는 듯한 조심스러운 발걸음이었다. 게다가 한둘이 아니었다. 꽤 많은 수였다. 신우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멈췄다. 그러자 작은 발걸음 소리들이 모두 멈추었다.
한기가 맴돌았다. 하늘이 갑작스레 어두워지더니 비가 내렸다. 갑작스레 내린 비에 신우는 이때다 싶어 그자리를 박차고 달아났다. 하지만 상대가 한 수 위였다. 어느새 자신의 앞으로 둘러싼 무리를 보고서 신우는 작게 침을 삼키며 주먹을 말아쥐었다.
"운도 더럽게 없네"
동네 양아치는 아닌 것 같았다. 일단 수적으로 밀리고, 비가 오는 악조건이란 것을 핸디캡으로 깔아둔다 해도 위험했다. 그들은 신우가 생각하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한놈 한놈 상대하는 것도 힘든데 한꺼번에 덤벼드니 가장 약해 보이는 녀석을 먼저 걷어찼는데 슬쩍 밀리는 듯싶더니 다시 덤벼왔다.
"으익…!"
날카로운 것에 베인 듯 뺨에 길게 피가 흘렀다. 뭐야 저게…! 칼도 아니었다. 그저 손이었다. 상대방은 모두 맨손이었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렀을 때 신우는 뒤돌아 그들을 노려보았다. 이건 고의였다. 일부러 자신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대체 무슨 속셈으로! 신우는 접질린 듯 한쪽 다리를 덜덜 떨었다.
벽에 등을 기대로 섰다. 그들이 달려들자 반격할 자세를 하고 있던 신우는 뭔가 이상하다는 듯 그들을 쳐다봤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못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검은 인영을 보았다. 긴 금발을 휘날리며 뒤돌아 서 있는 그 인영이 한걸음 멀어지자 그들은 일제히 피를 흩뿌리며 죽었다.
신우는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를 붙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그 인영은 살짝 뛰더니 건물 옥상 위로 올라갔다. 비가 와서 그런지 올려다보기가 힘들었다.
"저기요!!"
그를 부르자 살짝 뒤돌아보는 듯했으나 여전히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잠깐…윽!"
접질린 다리가 기어코 일을 만들었다. 그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휘청거리자, 순식간에 누군가 자신을 붙잡았다. 그리고 골목의 가로등이란 가로등, 불빛이란 불빛은 다 꺼져버렸다. 어둠에 익숙하지 않은 신우는 그를 알아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그는 곧바로 신우를 부축한 뒤 큰손으로 눈을 가려버렸다.
"고개 들지 말아요."
그리고서 신우의 머리를 살짝 아래로 내려주면서 어깨에 기대게 했다. 분명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인데, 어디서 맞아본 체취인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마 단시간에 많은 일들이 일어나서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신우의 다리 상태를 보고서 안 되겠다 싶어서 그를 들쳐 안았다. 그리고는 얼굴을 들지 말라며 신우의 머리를 가슴팍에 안았다.
조금 부끄러운 건지도, 신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긴 금발이었다. 외국인인가? 외국인치고는 우리나라 말을 무척 잘한다고 생각하며 그대로 있었다.
집까지 거리를 꽤 있었는데도, 그는 엄청나게 빨리 도착했다. 집에서도 불이 다 꺼져 있어서 그의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는 어떻게 알았는지 수건을 머리에 던져주다시피 하고 베란다로 나가려고 했다.
"잠깐만요!"
"……?"
"어…저 "
고맙다고 해야 하는데 그의 행동이 너무 수상해서 그러지 못했다. 여긴 13층이고 들어올 때도 베란다로 들어왔고, 나갈 때도 그럴려고 했다.
"저…혹시 스파이더맨?"
"풉!"
그는 신우의 상상력에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기억 같은 거 지우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얼굴을 밝히지 않으려고 신우의 눈을 가리고 들어온 거지만 스파이더맨은 너무했다. 적어도 슈퍼맨은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나 눈치가 없을 줄이야.
"아닌가?"
떠올리면 좋겠다는 건,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건 단순한 내 이기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신우에게 다가가 눈을 마주 봤다. 이 눈동자를 마주 보는 건 언제나 기분 좋았다.
"이건 답례로 받아가죠."
그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는 그대로 입을 맞췄다. 비에 젖어 있어서 그런가, 훨씬 부드러웠다. 그리고 수월했다. 분위기에 젖어서 그런가, 신우는 훨씬 고분고분 했다. 밀어내지도 않고 오히려 그의 손위에 손을 겹치고선 눈을 감았다.
이 일은 마스터께는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라이! 우리가 왔다!!"
이제는 당당히 문을 열 수 있게 된 라이가 친구들을 반겼다. 왁자지껄 해지는 거실을 보며 프랑켄은 머리가 지끈지끈 해지는걸 알 수 있었다. 그러다 문뜩 신우와 눈이 마주쳤다. 신우는 자신을 한참 보더니 이내 눈길을 돌렸다. 설마 알아차렸겠어, 부엌에서 서 있는 프랑켄을 향해 신우가 걸어왔다. 도둑이 제발 저리다고 뜨끔했지만 신우는 그저 냉장고에 가기 위해 일어났을 뿐이었다.
"며칠 전에 어떤 남자를 봤는데요"
"……."
"엄청 키 큰 남자가 긴 금발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나라 말을 엄청 잘했어요."
분명 지나가는 말로 했지만, 프랑켄은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똑똑히 알았다. 프랑켄은 작게 웃고는 그런가요. 하고 대답했다. 신우는 냉장고에서 콜라를 꺼내면서 프랑켄을 쳐다보았다.
"할 말 없어요?"
다른 아이들은 게임삼매경이었다. 신우는 꼴찌라서 콜라를 가지러 온 것 뿐이었다.
"무슨 소린지…"
순간 신우가 프랑켄의 옷을 붙잡곤 키스했다. 살짝 입을 맞추고선 떨어져 나갔지만, 프랑켄은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히히…"
"하아…"
역시 기억을 수정할 껄 그랬다.
"애들한텐 비밀로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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